“우주는 진공이라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말은 과학 시간에 배운 상식처럼 들리지만, 최근 NASA의 발표는 이 상식을 뒤흔든다.
2022년, NASA는 ‘블랙홀의 소리’를 공개했다. 그것도 우주 심연에서 나오는 진동을 실제로 변환해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만든, 진짜 ‘소리’였다.
도대체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어떻게 소리를 ‘듣는다’는 걸까?
이 글에서는 그 과학적 원리부터, 블랙홀이 내는 소리의 정체, 그 소리로 인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 들에 관에 글을 써보겠습니다.
진공의 우주에 ‘소리’는 없다? – 음파 대신 파동을 듣다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소리는 공기 분자들이 진동하면서 귀에 전달되는 압력의 변화다.
이런 전통적인 의미의 ‘소리’는 매질(공기나 액체 등 전달 물질)이 있어야만 전달된다.
하지만 우주는 거의 완전한 진공. 공기도, 물도, 바람도 없다.
그렇다면 NASA가 말하는 블랙홀의 ‘소리’는 무엇일까?
● ‘소리’가 아니라 ‘파동’을 변환한 것
우주에는 공기가 없지만, 가스와 플라즈마, 중력장 등 다양한 형태의 물리적 파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은하 중심에 위치한 블랙홀은 주변의 가스를 흡수하거나 방출할 때, 밀도 파동(density waves)을 만들어낸다.
이런 파동은 너무 낮은 주파수를 가져서 인간의 귀로는 감지할 수 없지만, 특정 알고리즘을 통해 주파수를 높이면 '듣는' 것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NASA는 블랙홀의 ‘소리’처럼 들리는 신호를 만든 것이다.
페르세우스 은하단에서 들려온 저음 – 블랙홀의 우주 교향곡
NASA가 공개한 ‘블랙홀의 소리’는 지구에서 약 2억 4천만 광년 떨어진 ‘페르세우스 은하단’에서 나왔다.
이곳은 중심에 초대질량 블랙홀을 가진 대형 은하단으로, 주변 가스와 상호작용하며 주기적인 파동을 만들어낸다.
● “가장 낮은 음”으로 기네스북에?
2003년 NASA는 이 블랙홀이 만들어내는 압력파를 분석한 결과, “B♭보다 57옥타브나 낮은 음”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이 주파수는 10⁻⁶Hz 수준으로, 1년에 한 번 진동할까 말까 한 극저주파다.
물론 인간은 이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지만, 이를 데이터로 수집한 뒤 수천 배 빠르게 재생하면 우리 귀로도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된다. 이 블랙홀은 가장 낮은 음을 낸 천체로 기네스북에도 등록됐다.
데이터로 듣는 우주 – 소니피케이션(sonification)의 과학
우주를 시각화하는 것이 익숙하다면, 최근에는 ‘듣는 우주’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소니피케이션(sonification)이라는 기법 덕분이다.
● 소니피케이션이란?
소니피케이션은 데이터를 음향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즉, 별빛의 밝기 변화, 블랙홀의 중력파, 맥동하는 펄서의 주기 등을 음의 높낮이, 길이, 강도로 바꿔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패턴을 청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고, 일반 대중은 보다 감각적으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
● 우주를 들려주는 프로젝트들
NASA의 “Chandra X-ray Sonification Project”: 엑스선 데이터를 오케스트라처럼 재해석.
ESA의 “Sounds of Space” 시리즈: 혜성, 목성 자기장 등 다양한 우주현상을 청각화.
블랙홀 충돌의 중력파 ‘삐-이익’ 소리: LIGO 실험에서 검출된 중력파를 음파로 변환한 사례.
소리를 통해 우주를 이해하는 이유 – 감각을 넘어선 과학
“그저 흥미로운 사운드 놀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굳이 우주의 파동을 ‘소리’로 변환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1. 인간의 청각은 ‘패턴 인식’에 뛰어나다
소리로 변환하면, 데이터 속 미세한 변화나 불규칙성, 주기성을 더 빠르게 인식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시각보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 감성과 과학의 연결
우주의 데이터를 ‘소리’로 전달하면, 대중이 그 과학적 사실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소니피케이션은 단지 분석 도구일 뿐 아니라,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언어가 된다.
3. 미래의 우주탐사 도구
향후 AI와 결합하면, 청각 기반 탐지 알고리즘이 우주 속 이상 신호나 미탐지된 현상을 자동으로 잡아낼 수도 있다.
실제로 NASA는 소니피케이션 데이터를 이용한 머신러닝 기반 이상 탐지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우주’는 들리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다
우주는 여전히 조용하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직접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파동, 진동, 리듬이 흐르고 있으며, 우리는 그 신호를 소리로 변환해 감각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블랙홀은 단지 삼켜버리는 괴물이 아니라, 우주 깊숙한 곳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존재다.
그 소리는 우리가 우주를 느끼는 또 하나의 창이다.